1. 공간이 주는 의미
시간, 공간, 인간.
한 세상 사는 일은 이 3간(間)을 통과하는 일입니다.
이 3간 중에서 비교적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공간입니다.
상대적으로 시간, 인간은 자기 마음대로 바꾸기 어렵습니다.
공간이 바뀌면 시간의 흐름도 달리 흘러갑니다.
교도소에서 보내는 시간과 영화관에서 보내는 시간의 흐름은 다릅니다.
그 공간에서 만나는 인간의 종류도 달라집니다.
그러니까 어떤 공간에 있느냐가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더군다나 자기에게 기쁨을 주고 세상의 시름을 달래주는 특정한 공간이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2. 지리산 형제봉이라는 공간이 주는 힘
차인(茶人) 나광호를 만나보니까 이 사람은 생계 활동 이외의 시간만 나면 지리산 형제봉을 올라가는 게 일이었다고 합니다.
형제봉에만 올라가면 삶의 의미가 느껴진다고 합니다.
형제봉은 지리산 자락이 남쪽의 섬진강 자락으로 내려오다가 멈춘 봉우리입니다.
악양 들판을 말발굽처럼 ‘U’ 자로 둘러싸고 있는 봉우리의 한쪽 끝이 형제봉입니다.
1200m에 가까운 높은 봉우리입니다.
봉우리 정상에는 행글라이더를 타는 활공장이 있어서 비교적 평평한 공간이 있습니다.
형제봉은 지리산 일대의 최고 전망대입니다.
360도가 모두 전망이 좋습니다.
바로 코앞의 구제봉, 칠성봉부터 시작하여 구례 쪽의 왕시루봉도 보이고 노고단, 반야봉, 촛대봉, 동쪽 함양, 산청의 천황봉까지
파노라마로 볼 수 있는 위치입니다.
산봉우리만 보이는 게 아닙니다.
형제봉 밑으로는 섬진강이 감아 돌아 흘러갑니다.
산봉우리만 있고 강이 없으면 홀아비와 같은데, 그 곱디고운 섬진강의 푸른 물이 부드럽게 허리를 감아 돕니다.
비 온 뒤에 섬진강에서 하얀 연기 같은 운무가 부풀어 오르는 광경을 보면 저절로 정치독(政治毒)이 빠집니다.
특히 달이 떴을 때 형제봉 정상에 올라가 보면 광양 백운산 너머의 남쪽 바다에서 올라오는 해무(海霧)와 섬진강의 강물에서 올라오는 운무(雲霧)가 섞이어 비단 이불 같은 형상을 만듭니다.
천상계의 신선들이 덮는 하얀 운무의 이불을 발밑에 딛고 서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하동 금오산 방향에서 떠오르는 일출을 보는 것도 장관이고, 구례 쪽으로 지는 석양을 바라다보면 온갖 분노가 사라집니다.
불가의 무량수경(無量壽經)에서는 석양을 자주 관조하면 저절로 욕심과 분노가 사라져서 도가 닦인다고 말합니다.
형제봉에 미친 나광호는 아예 형제봉 옆의 부춘마을에다 집까지 장만했습니다.
서울에만 있으면 아파트, 주식, 명품만 보입니다.
자연에 나와 보면 일출과 석양, 달빛의 운무가
‘우물쭈물하다가 한 세상 다 간다’고 귀띔해 줍니다'
3. 인기로 공간을 채워야 한다.
건물을 새로 지으면 그 터의 기운이 좋아야 합니다.
먼저 땅에서 올라오는 지기(地氣)가 좋아야 하고, 그다음에는 인기(人氣)가 있어야 합니다.
특히 고층 건물일 경우에는 인기로 공간을 채워야 합니다.
10~20층은 개인의 경영 능력과 재복으로 어떻게 커버가 되지만 50층이 넘어가는 빌딩은 건물주가 주변 공동체의 인심을 얻은 덕망가가 아니면 유지가 힘이 듭니다.
사회적 덕망이라는 기운으로 공간을 채워야지, 그렇지 않고 공간이 비어 있으면 '펑크'가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