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스토리
신기(神氣)가 무엇인가는 노벨상 수상자들도 아직까지 규명하지 못한 문제입니다.
‘신기’를 과학적으로 설명해 주는 연구 결과는 언제 나오는가.
이것에 대하여 과학적 해명이 아직까지 없다면 필자가 그동안까지 축적한 경험적 차원의 설명이라도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입 다물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AI와 신기의 분기점은 텍스트라고 봅니다.
텍스트가 있는 것은 AI의 학습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텍스트가 없는 분야, 텍스트 밖의 영역은 AI가 잡아낼 수 없다. 텍스트 밖의 영역은 신기의 영역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창의성 내지는 창의력이 발휘되는 그 어떤 순간은 신기가 작동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르키메데스가 목욕탕에 들어가는 순간에 섬광처럼 다가온 영감.
‘유레카!’ 이것도 신기의 작용이라고 봅니다.
발명왕 에디슨의 여러 가지 발명도 그 어떤 영감이 작동한 결과인데, 이 영감은 신기에서 왔습니다.
1980년대 초반 소설 ‘단(丹)’의 주인공이자 계룡산파의 장문인이었던 봉우 권태훈(1900~1994) 선생은 필자와 같은 20대 초반의 젊은 대학생들을 앉혀 놓고 이야기해 주셨던 기억이 지금도 아련하게 남아 있습니다.
추사 김정희 같은 인물의 글씨 쓰는 능력도 ‘서신통(書神通)’의 결과였다고 말입니다.
추사는 글씨의 신, 즉 서신(書神)과 통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한국 사람이 자주 쓰는 ‘신바람’, ‘신명(神明) 난다’와 같은 표현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수천 년 동안 신기를 중시하고 신기의 효과를 체득했던 민족이었음을 보여줍니다.
현대 정주영이 처음 조선업을 시작할 때 500원 지폐에 그려져 있던 거북선을 보여주며 ‘우리는 중세부터 철갑선을 만들었다’고 한 대목도 순간적인 신기의 발현이 아닌가 싶습니다.
2. 한자풀이
'신기(神氣)'
:생각지도 않았던 내용들이 글 쓰는 도중에 저절로 생깁니다.
저절로 되는 것, 이것이 이른바 '신명'(神明) 기운입니다.
프로 바둑계(界)에서는, 9단(段)을 입신(入神)이라는 칭호를 붙여서, 신(神)을 운운합니다.
이런 것이 소위 말하는 신명기운, 또는 신기(神氣)입니다.
내 의지(自我)와 상관없이 작동하는 무의식적인 정신영역입니다.
'허튼짓'을 할 때도 물론 그런 일이 생깁니다. 대화를 할 때도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튀어나오는 대로
말을 하는 겁니다. 대개 들 그럴 겁니다. 말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오면, 중간에 그만 옆 길로 새는 일이 비일비재
합니다. 언중유골(言中有骨) 운운하지만, 암튼 그런 것도 신명기운입니다.
‘서신통(書神通)’
:글의 신(神), 또는 문장의 신과 통한 것을 우리 선조들은 '서신통(書神通)'이라고 불렀습니다.
내가 이 말을 처음 듣게 된 계기는 80년대 초반 소설 '단(丹)'의 모델이었던 봉우 권태훈 선생으로부터였습니다. 봉우 선생은 추사 김정희를 가리켜 서신통을 했기 때문에 그러한 박학과 문장, 그리고 추사체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일반적인 범주를 벗어나는 특출한 재능은 본인의 노력도 노력이지만 정신세계의 어떤 신(神)과 접하거나 통하였을 때 나온다고 보는 관점이었습니다.
엊그제 '개미'를 쓴 프랑스 소설가 베르베르(49)의 인터뷰 기사를 보니까, 그가 이제까지 써놓은 단편소설이 500편이나 된다고 합니다.
베스트셀러인 '개미'도 18세부터 쓰기 시작하였다니 비범한 재능의 소유자임이 확실합니다. 그런데 베르베르의 이러한 내공은 밤에 자면서 꾼 '꿈'에서 나왔다는 해명을 듣고 보니 더욱 흥미로운 생각이 듭니다. 보통사람은 자고 나면 상당 부분 꿈을 잊어버리기 쉬운데 이 사람은 매일 아침에 일어나 5분씩 꿈일기를 썼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기억이 선명하게 난다는 이야기 아닌가! 결국 소설을 구상하는 데 있어서 그 기본 뼈대는 꿈에서 얻은 내용으로 충당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베르베르는 서신통을 한 사람입니다.
서신통을 한 사람들의 윗대 족보를 올라가 보면 그 조상 가운데 공부를 많이 한 학자가 있거나, 이런 분야에 평생 골몰했던 사람이 있었던 사례가 많습니다. 그런 조상들이 꿈을 통하여 후손에게 알려줍니다. 의식 밑에 잠복해 있는 무의식(無意識)은 죽은 조상과 살아 있는 후손이 통신을 주고받는 광케이블인 셈입니다. 살다 보면 중요한 결정을 앞두거나 또는 절대 위기에 처해 있을 때에도 영험한 예지몽을 꾸는 수가 있는데, 이것도 역시 무의식을 통한 조상과의 교감이라고 나는 해석합니다.
서신통을 달리 해석한다면 격세유전(隔世遺傳)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문장이나 이야기 업에 종사했던 조상의 유전자가 몇 대(代) 건너뛰어 후손에게 유전된 것입니다. 사례연구 삼아 베르베르의 가계도를 한번 조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찌 되었든 간에 그는 소설신(小說神)과 접신된 것 같습니다.
3. 교훈
내가 만나본 기업 창업자들은 신기가 어느 정도는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창업자의 신속하고 정확한 판단력의 바탕에는 신기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신기의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첫째는 보호령입니다.
보호령이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보호령이 결정적인 순간에 영감이나 신기를 줍니다.
대개는 보호령이 조상신들입니다.
둘째는 불교에서 말하는 아뢰야식, 즉 장식(藏識)입니다.
장식은 깊은 무의식입니다.
수많은 전생부터 축적한 모든 정보가 여기에 녹아 있습니다.
전생에 축적해 놓은 정보에서 신기가 발현됩니다.
신기는 무의식의 발로이기도합니다.
셋째는 하느님, 부처님, 알라와 같은 신들로부터 오는 기운입니다.
가장 고전적인 의미의 신기에 해당합니다.
AI가 신기와 종교를 사라지게 할 수 없습니다.